이곳 에스까수는 따스한 햇살 아래 푸른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참으로 평화로운 곳입니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오후,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올 때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커피 한 잔이 있습니다. 바로 차가운 물로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우려내는 '콜드브루 (Cold Brew)'입니다.
젊은시절 치열하게 살아가며 마셨던 뜨겁고 진한 커피들이 때로는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기도 했다면, 나이가 들어가며 만난 콜드브루는 마치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는 인생의 스승 같습니다. 찬물로 오랜시간 기다려 얻어내는 그 깔끔하고 깊은 풍미는 50대의 삶이 지향해야 할 성숙함도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에스까수에서 일상처럼 즐기고 있는 콜드브루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1. 차가운 물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기다림의 원리
콜드브루(Cold Brew)는 말 그대로 '차갑게 추출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드립 커피나 에스프레소가 90도 안팎의 뜨거운 물과 높은 압력을 이용하여 몇 초에서 몇 분 사이에 빠르게 성분을 뽑아내는 방식이라면, 콜드브루는 상온의 물이나 차가운 물을 이용하여 10시간에서 12시간, 길게는 24시간 동안 천천히 성분을 우려냅니다.
커피 원두에 함유된 고유의 성분들은 물의 온도에 따라 추출되는 양상이 크게 달라집니다. 뜨거운 물은 원두의 지방 성분과 쓴맛, 산미를 강하게 끌어내는 반면, 차가운 물은 쓴맛을 내는 카페인과 탄닌 성분이 비교적 적게 추출되도록 돕습니다. 대신 원두 자체의 은은한 단맛과 고소한 향미를 밀도 있게 담아내지요. 뜨거운 열기 없이 시간이라는 요소만으로 원두 본연의 정수를 뽑아내는 과정은 마치 세월이 쌓여 깊어지는 우리네 인생을 돌아보게 합니다.
2. 부드러운 목넘김과 깔끔한 풍미, 콜드브루의 매력
콜드브루를 한 모금 머금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특징은 단연 '부드러움'과 '낮은 산미'입니다. 뜨거운 물로 추출한 커피에서 흔히 느껴지는 알싸한 쓴맛이나 강렬한 신맛 대신, 입안을 매끄럽게 감싸는 바디감과 함께 과일이나 견과류, 혹은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은은한 단향이 감돕니다.
특히 커피를 마신 후 위장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는 중년층에게 콜드브루는 참 좋은 선택이 됩니다. 뜨거운 물로 추출할 때 생기는 산성 성분이 적어 속 쓰림이 훨씬 덜하고, 마신 후 입안에 남는 여운이 매우 깔끔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내도 보통의 커피는 마신 뒤 속이 더부룩하다고 할 때가 있는데, 잘 우려낸 콜드브루 한 잔은 아무런 부담 없이 편안하게 즐기곤 합니다.
3. 집에서도 온 가족이 즐기는 다양한 콜드브루 레시피
콜드브루 원액을 한 번 추출해 두면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취향에 따라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에스까수의 따스한 낮 동안에는 유리잔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콜드브루 원액과 물을 1:2 또는 1:3 비율로 섞어 마시는 '아이스 콜드브루'가 단연 으뜸입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주말에는 차가운 우유에 콜드브루 원액을 부어 만드는 '콜드브루 라떼'를 즐겨 만듭니다. 일반 에스프레소 라떼보다 우유의 고소함과 콜드브루 특유의 풍미가 어우러져 부드러운 밀크티처럼 고급스러운 맛을 냅니다. 가끔 따뜻한 커피가 그리울 때는 원액에 따뜻한 물을 섞어 마셔도 그 깊은 향이 어디 가지 않고 은은하게 유지됩니다. 온 가족이 각자의 취향대로 즐길 수 있으니 식탁 위에 유쾌한 대화가 끊이지 않습니다.
코스타리카의 유명한 인사말 중에 '푸라 비다 (Pura Vida, 순수한 삶)'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삶의 순간순간을 감사하게 살아가는 정신을 뜻하지요. 찬물을 한 방울 씩 떨어뜨리며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비로서 근사한 향을 내어주는 콜드브루야말로 이 '푸라 비다'의 가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료가 아닐까 싶습니다.
빨리빨리 결과를 내야했던 한국에서의 바쁜 삶을 뒤로하고 이곳 에스까수에서 지내며, 저는 커피 한잔을 기다리는 시간조차 즐기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은은하게 익어가는 콜드브루처럼, 제 삶과 가족과의 시간도 그렇게 깊고 풍성하게 익어가기를 바라는 요즘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여러분도 마음의 여유를 담아 깔끔한 콜즈브루 한 잔 기울여 보시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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